대한항공 KAL기 007편 격추사건
40여 년 전 소련의 전투기가 우리나라의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킨 사건인 KAL기 007편 피격사건.
1983년 9월 1일 미국의 뉴욕을 출발하여 알레스카의 앵커리지를 지나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의 007편은 총 246명의 승객과 23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으며 이 중에는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한국인과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또는 업무를 보러 가던 미국인 그리고 캐나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미국 하원의원인 로렌스 맥도널드도 함께 탑승했죠.
새벽 2시 7분 대한항공은 나리타 관제소와 함께 정상적인 코스를 통과했다고 교신했습니다. 이보다 1시간 전 소련의 su-15는 사할린 근처의 소련영공을 침범한 한 비행체가 있다고 교신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소련의 su-15는 대한항공 007편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대한항공의 조종사 천병인 기장은 우리나라 기장 중 엘리트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기장들은 공군 조종사를 거치고 온 경력자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천병인 기장은 공군 조종 간부를 수석으로 수료한 기장이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를 운항한 경력도 있는 베테랑 조종사였습니다. 이 베테랑 조종사가 어떤 이유인지 소련의 영공을 침범하여 순항 중이었고 소련의 su-15 전투기는 007편을 추격하게 됩니다. 당시 많은 미국 정찰기들이 민항기로 위장하여 소련을 정찰하던 시기였으며 소련은 이러한 정찰기들이 보이면 격추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조종사 오시포비치는 당연히 영공을 침범한 미국 정찰기라고 생각했고 경고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예광탄도 없던 새벽이었기에 조종사가 경고사격을 눈치재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시포비치에 따르면 경고사격 후 007편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며 고도를 올렸고 이것은 경고사격을 인지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라고 판단하여 격추를 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전투기가 갑자기 느리게 날게 되면 속도를 잃고 추락하는 것을 노렸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탑승객 전원이 요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 서방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져 이 사실을 소련에 항의하게 됩니다. 순수 민항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련과 주변국들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사건이 잊혀지게 됩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이 사고의 블랙박스가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즉시 국제 민간항공기구에 이 블랙박스를 의뢰하게 되고, 제 3국인 프랑스가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조종사가 갑자기 무슨 이유로 항로를 이탈하였는지 밝혀지지 못했고 조종사는 정말 민항기를 몰라봤는지 등 여러 가지 불확실한 추측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냉전시대 때의 살벌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우리나라가 짊어지게 되었으며, 이 결과 민항기가 남의 영공을 침범하더라도 격추를 하는 주체가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카고 협약이 개정되었습니다.
'호기심가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클라, 홈웨어의 테슬라 (0) | 2023.02.08 |
---|---|
향에 대한 진심, 조말론 (0) | 2023.02.07 |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상징, 베스킨 라빈스 (0) | 2023.02.05 |
최초 로고 각인, 라코스테 (0) | 2023.02.04 |
커피계의 애플, 블루보틀 (0) | 2023.02.03 |